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다.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는 못해도 뒤처지기는 싫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인터넷 뉴스를 보고,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정보들을 접하는 것이다. 그처럼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자극으로 인해 뇌는 어느 순간 과부하에 걸려 두통을 호소한다. 뇌가 더 이상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멍 때릴’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안함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듯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여태까지 들어온 자극이나 머릿속에 쌓인 정보들이 소화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뇌는 쉬는 시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극과 정보들을 내적으로 재배열하고 통합해 어떤 건 걸러내고 어떤 건 의미를 두는 등 사고를 형성한다.
그런데 뇌가 쉬지 못하면 끊임없는 자극에 반응하느라 지쳐 버린다. 그러므로 어떤 답이 계속해서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그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뇌가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통합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쉬지 않으면 시야가 좁아져 평소에 할 수 있는 적절히 확장된 수준의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자신 있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라.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함은 줄어들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도 느끼고 가볍게 산책을 가기도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은 운동할 시간을 비워 놓는 것이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못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그걸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나에게 멍 때릴 자유를 굉장히 많이 허락할 작정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와 함께 다이어트를 했을 때 두 사람 모두 체중 감량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며, 상대의 감량 결과가 좋을수록 자신도 더 많은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파트너와 함께하면 서로를 응원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 누군가가 당신의 곁에서 불평을 들어주고 응원을 해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된다.
예컨대 미국의 알코올중독자재활협회 ‘AA(Alcoholics Anonymous)’는 ‘동창회’의 형식을 빌려 서로의 경험을 나누도록 함으로써 참석자들이 함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친구는 당신의 모니터링 요원 겸 감독관이 되어줄 수도 있다. 친구를 감독관으로 잘 활용하려면 미리 자신에게 줄 선물(보상)을 구매해 친구에게 맡겨라.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에는 선물을 돌려받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친구에게 선물하기로 한다는 약속을 해두면 목표를 달성해야 할 더욱 강력한 동기가 생긴다.
대화를 시작할 때 실제로 관찰한 것에 대해서나 서술적인 내용의 것을 주로 나눈다면, 대화라는 건물의 층이 높아질수록 마음속에 품고 있던 느낌이나 생각들을 꺼내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만약 어떤 일을 서술하는 데에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면 이는 당신이 상대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화라는 건물을 한 층, 한 층 잘 쌓아 올릴 수 있을까? 이를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바로 상대방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낸 다음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길 좋아한다.
자신의 인생을 별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사건과 어려운 결정의 순간은 꼭 있게 마련이니까.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주인공이 있기에 이야기가 한층 더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인터뷰이가 경험했던 어려운 결정의 순간은 곧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 되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본래 각자의 풍파를 이겨내며 순간의 선택과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 그래프를 바꿔나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우리에게 배움을 주고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를 끌어내기가 정말 어려운 때도 있었다. 특히 상대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길 원치 않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럴 때 나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 놓았다. 상대가 나와의 대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게스트들은 어느새 긴장을 풀고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단,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미끼 던지기가 무차별 ‘말폭탄’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공통분모에 속한 친구나 함께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가십은 피하고 사생활은 존중하는 선에서 말이다.
상대가 미처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과 이야기 속에 숨겨진 상황,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낸 목적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더 나아가 대등한 위치에서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상대의 말에 집중해 올바른 반응을 보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나보다는 상대의 무대를 높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컨대 맥아담스처럼 내러티브 이론을 논하는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야기를 하는 행위’와 ‘이야기를 듣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구조화하고 의미화한다고 말한다.
즉, 아무리 소소하고 일상적인 경험일지라도 그에 대해 완벽하게 서술하는 순간 서술과 경청이라는 상호 과정을 통해 그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탐색하는 중요한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로써 더 이상 사소한 일이 아닌 서로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완전히 공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니 거침없이 상대의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거기에 겸사겸사 자신의 이야기를 끼워 넣어라. 이렇게 실질적인 경험의 공유를 통해 서로 더 깊은 생각과 공감을 쌓아갈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람은 상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