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무리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도 무례하게 우리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상대가 자기 욕구를 들어 줄 때만 호의를 베풀고, 그들에 대한 상대의 요청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묵살한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늘 존중받아야 마땅한 취향이자 누려야 할 권리이지만, 상대방의 요구사항은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요청에 불과하며 자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그 논리가 어찌나 교묘한지, 듣는 이조차 그 사람이 이기주의자인지 개인주의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들은 바로 나르시시스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는 사랑에 빠져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호숫가를 배회하다 죽임에 이른 청년이다.

 

훗날 프로이트는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착안하여, 모든 리비도가 자신에만 향하는 심리적 상태를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고, 그런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명명했다.

 

나르시시스트는 나르키소스처럼 오직 자기만을 바라볼 뿐 타인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들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뿐더러, 타인을 기능적으로만 인식한다.

 

즉 타인이란 자기의 위대함을 칭찬해 주고, 자기를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 주는 관중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관심이 자기 자신과 자기 이익에만 꽂혀 있기에 그들은 그 누구와도 이원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상호 호혜적이고 상호 의존적인데 나밖에 없는 그들이 어떻게 이런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같은 이유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아무리 살갑더라도 진정한 친밀함을 만들어 나가기 힘들다.

 

이처럼 겉으로만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가성 친밀감(pseudo-intimacy)이라고 한다.

--한성희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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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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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희생양 역할을 했던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 독립을 하면 희생양 역할은 끝난 걸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과 달리 역할이 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원가족을 떠난다고 해서 희생양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희생양의 메커니즘은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부부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 또는 가족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또 다른 희생양으로 차출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희생양의 패턴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죠.

 

희생양의 역할을 했던 분들은 그저 과거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현재진행형으로 그 역할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안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최광현의 [관계의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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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사람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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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 YES24

실생활 심리학으로 그와 그녀와 세상을 내 뜻대로 끌어오라심리학은 새로운 문을 열어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게 하고 발전시켜주는 열쇠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서 감정적으로 안정과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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