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부당한 침입에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예스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본 적 있니? 어떤 부탁을 받더라도 그들의 대답은 대부분 예스.

 

상사가 자꾸만 일을 떠넘겨도, 동료가 휴가 날짜를 좀 바꿔 달래도, 친구가 돈을 꿔 달래도, 누가 보험 좀 들어 달래도 알겠다고 대답한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도 예스맨을 구세주인 듯 고마워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주변인들도 예스맨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

아니, 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못 하는 상황이면 거절하면 되죠. 거절을 안 하니까 계속 맡기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왜 그들은 거절을 못하는 걸까? 표면적으로는 거절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 더 나아가면 자신이 비난당하고 거절당할 것을 염려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의 저변에는 상대에게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즉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지만, 그것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활화산처럼 모든 분노가 분출될까 봐 두려워서 그 감정을 꾹꾹 누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살펴볼 것이 있다. 공격성에는 나쁜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격성을 남을 해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공격성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본능적 속성이다. 공격성이 있어야 나를 보호할 수 있고 또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이때의 공격성은 파괴적 공격성이 아닌 자기 보호의 공격성, 즉 건강한 자기 주장이다.

 

거절은 타인의 의지와는 다른 나만의 뜻이 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자신이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있고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없는지 상대에게 알리는 일이다.

 

늘 부탁을 들어주던 사람이 한계를 설정하면 처음에 주위 사람들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인들이 상처받고 힘들어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감정일 뿐이다. 그들의 감정은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스스로를 가장 많이 아껴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절을 잘했으면 좋겠고, 거절한 뒤에는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다 거절당한 상대방이 서운해하거나 뒤에서 네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소설가 김훈의 말이 도움이 될 거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딸아, 김훈처럼 세상이 너를 함부로 대하도록 허락하지 마라. 진정한 이기주의자란 자신의 길을 갈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에 당당히 맞서라.

 

그래야 세상이 너를 만만히 보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를 아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너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만틈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성희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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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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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이란 말은 구약성서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어린 양을 통해서 이스라엘인의 죄를 대신하게 했던 희생제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인문학자였던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신화와 설화에 대한 수많은 분석을 통해서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수단이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지라르의 말에 따르면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하나의 희생을 통해 가능한 한 모든 희생물들을 대신하는 것으로, 동물의 희생을 인간의 희생으로 대신하는 기능 뿐 아니라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것입니다. 인간이 수천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 공동체 안에(가족도 마찬가지) 위기가 닥쳐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사실 정말 힘든 과정입니다.

 

문제를 분석하고 직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요. 그런데 누구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 어떻습니까? 쉽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을 과거 우리나라 군사 정부 시대 때는 총대 메기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총대를 멜 거냐 하는 것이었죠. 최근에는 꼬리 자르기입니다. 몸통은 누구이고, 어느 선에서 꼬리를 자를 거냐는 거죠. 그 잘리는 꼬리가 바로 희생양입니다.

 

한 기업이나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모두가 책임을 지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한 명이 책임을 다 지게 되면 어떻습니까? 그만큼 희생이 덜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은 수천 세대를 내려오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입니다. 지라르는 유럽 역사에서 발생했던 유대인 박해 사건이나 마녀사냥도 희생양 메커니즘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했을 때 상당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지구의 끝이라고 여겼던 스페인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주 역사는 정말 긴데, 그들을 이주하게 했던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유대인 박해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불과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박해도 희생양 메커니즘이었어요.

 

사회에 기근이 들고 뜻하지 않은 질병이 돌 때,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고 국가가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해결하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문제가 되게 복잡하거든요.

 

하지만 이 모든 게 유대인 탓이라고 하면 어때요? 금방 해결됩니다. 힘이 없는 유대인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그들은 박해받지만 국가 시스템이나 종교체계들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중세시대가 끝날 무렵 있었던 마녀사냥도 일종의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그 당시는 심각한 질병이 계속되고 모든 땅이 황폐화되었던 때예요. 이럴 때 책임을 돌릴,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투사할 대상을 찾은 것입니다. 그게 여성이었던 것이죠.

 

최근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시스템, 특히 의료 시스템이 마비된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법은 여전히 가장 쉬운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어느 정도 분은 풀리겠지만 여전히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족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집단 안에도 있습니다.

 

집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투사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서 그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거죠.

--최광현의 [관계의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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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사람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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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 YES24

실생활 심리학으로 그와 그녀와 세상을 내 뜻대로 끌어오라심리학은 새로운 문을 열어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게 하고 발전시켜주는 열쇠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서 감정적으로 안정과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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