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다시 쳐서 일어나게도 한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가톨릭에서는 이 고통을 펠릭스 쿨파, ‘행운의 추락’이라고 표현한다. 상처가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날이 어두워져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경사진 들판 한가운데에서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다. 수도승과 제자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자, 그 집 가장이 친절하게 안으로 맞아들여 신선한 우유로 만든 간단한 음식과 치즈를 대접했다. 가난하지만 너그러운 그들의 마음씨에 두 사람은 감동받았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산모퉁이에 이르자 수도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가서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귀를 의심했다.

“저 가족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재차 지시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젊은 제자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몰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 가족의 미래가 걱정되었으나, 지혜로운 스승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로 서약했기 때문에 암소를 절벽으로 데려가 밀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제자 혼자 전에 묵었던 그 오두막 부근을 지나게 되었다.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 아름다운 집이 세워져 있고, 정성 들여 가꾼 밭과 화단이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풍요와 행복이 넘쳤다.

 

제자가 문을 두드리자 소박하지만 품위있는 남자가 나왔다.

“전에 이곳에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이 굶어 죽게 되어 당신에게 이곳을 팔았나요?”

 

남자는 자기 가족이 그곳에서 줄곧 살아왔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여윈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가고 있었죠. 그것말고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서!!

 

(^-^)스스로 암소와 작별할 만큼 대범할 순 없더라도, 후려치는 파도에 순순히 무너지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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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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