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을 보다가 불현듯 깨달은 건, 나는 여전히 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앤만큼이나 마릴라 아줌마 역시 좋아하게 됐다는 점이다. 어릴 적엔 마릴라 아줌마가 그렇게나 야박해 보이고 싫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수다쟁이에 사고뭉치였던 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리고, 마릴라 아줌마는 표현하는 방법이 매튜 아저씨와 달라서 그렇지 따뜻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이 인간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라던데,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밤낮없이 일에 찌들어 신경질 대마왕이 된 소시민 고길동의 삶이 이제야 내 눈에 밟힌다. 고길동 입장에서 보면, 허락 없이 대뜸 남의 집에 쳐들어와 식객이 된 둘리가 얼마나 미웠을까. 고길동에게 둘리는 여간 낯선 존재가 아닌데(심지어 공룡!), 가장으로서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는 둘리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고길동이 내 친구라면 조용히 효자손 하나 건네주고 싶다. 둘리, 도우너, 또치, 희동이가 합심해서 괴롭히면 효자손으로 등 긁는 척 하다가 꿀밤 한 대씩 먹여주라고 말이다.

 

몇 년 전,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라는 에세이집을 냈고, 서문에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들 속에서도 시간의 주름을 본다. 눈에 보일 리 없는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리 없는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썼었다.

 

그 말을 쓸 땐 마릴라나 고길동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의 늙은 주름과 삶의 궤적들이 보인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동이 이제 조금씩 이해된다. 사람을 빠르게 치려다 오타가 나면 삶이 된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실은,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들은 사람들이 수없이 내고 있는 오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중에서!!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면 비록 암기력, 기억력은 떨어져도...이해력의 깊이가 일취월장할 수도~^^
늙어감이 모든 것의 노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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