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올리버 색스가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엮은 신경질환 환자들에 대한 임상보고서 24편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은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기에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질병 치료에 치우치기 보다는 인간적인 공감대로 서로의 다름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누군가의 눈에는 중증 질병으로 보이는 결함, 한계와 약점들이 환자 본인의 삶에는 오히려 축복이자 힐링(치유)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의사인 그가 환자와 서로 협력자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배우고 도우면서 깨닫게 된 최고의 처방전이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에 문제가 생긴 남자는 그저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시선 처리와 표정이 남들과 약간 달랐는데 풍경을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귀로 듣고 있었다.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네요. 저기 멀리서 기차 소리도 들리고요. 마치 교향곡처럼 들리지 않나요? 혹시 오네게르의 <퍼시픽 231>이라는 곡을 아시나요?”

 

완벽한 귀와 목소리에 반짝이는 음악적 지성까지 어우러진 그런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렇게 멀쩡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걸까?

 

왼쪽에 놓인 물건을 못 보는 일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시력은 바닥에 떨어진 바늘도 쉽게 찾아낼 만큼 아주 좋았다. 그의 눈은 사물을 보는 데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는 난데없이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리고 그럼에도 그의 아내는 마치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아님 미쳤을까? 아니면 정말 눈이 안 보이는 걸까?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인 사람이 어떻게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어떤 물건도 친숙한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시각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생기가 없는 추상의 세계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있었다. 그에겐 현실의 시각적 자아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물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시각인식불능증은 갈수록 더 심해졌고 그에 따라 사물을 재현하고 상상하는 능력, 구체성에 대한 감각, 현실감이 모두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훌륭한 음악가이고 음악은 선생님의 삶 그 자체입니다. 만약 제가 처방을 내린다면, 음악 속에 파묻혀서 생활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음악이 선생님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시라고 말입니다.”

 

질병(커다란 종양 즉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퇴행)의 점진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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