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악당이 괜히 악당일까? 은퇴해도 된다고 할 땐 언제고, ‘박사’가 느닷없이 베이비와 데보라 앞에 나타나 새로운 강도 프로젝트 참여를 강요하고 위협했다.
“채무가 끝났다고 우리 인연도 끝날 줄 알아? 나랑 손잡으면 거금을 벌 수 있잖아. 어때, 할거지? 넌 내 행운의 부적이거든. 난 네가 꼭 필요해. 운전대 잡을래 아니면 휠체어 탈래?” (박사)
베이비는 ‘박사’ 일당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아버지를 요양원으로 옮겨 모시고, 데보라와 몰래 도피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도중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우린 사는 세상이 달라. 미안해!” (베이비가 데보라에게)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화면을 가득 채운 멋지고 풍부한 음악들에 폼생폼사 스타일리쉬한 액션,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청춘 코드까지 버무려져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다.
라떼 스타일 아닌 나름 트렌디한 권선징악 해피엔딩 메시지도 있다. 강도, 상해, 살인까지 일삼았던 ‘박사’ 일당 모두 전멸했고, 베이비는 어린 시절 마수에 걸려들었던 불행과 ‘박사’ 일당으로부터 인명을 구하고 벗어나려 애썼던 정황, 늙고 아픈 양아버지를 부양했던 착한 심성에 관한 증언들이 이어졌음에도 감옥행을 피할 순 없었지만, 데보라는 감옥에 있는 베이비에게 기다리고 있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불행이 오는 건 싫지만 비가 내려야 무지개도 뜨는 법♬ (데보라의 노래)
변함없이 응원하며 사랑하는 데보라가 있으니 Someday, 베이비의 인생에도 무지개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안전한 보살핌이 필수인 어린 시절에 오히려 늙고 아픈 양아버지를 혼자 힘으로 부양해야 하는 베이비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구분하는 기본조차 사치일 수도 있을 만큼 생존 그 자체가 외롭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조직행위학자 칼 웨이크 교수는 꿀벌 6마리와 파리 6마리를 각각 유리병에 넣은 다음, 유리병을 수평으로 눕혀 병 바닥을 창 쪽으로 향하게 했다. 꿀벌들은 빛이 들어오는 쪽에서 버둥거렸지만 그 곳은 병 바닥이었고 힘이 빠진 꿀벌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일반적으로 밀폐된 공간의 탈출구는 빛이 들어오는 곳이다. 꿀벌들은 이 법칙을 알고 있었고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죽음을 맞았다. 꿀벌들에겐 유리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자연계에서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뚫지 못하는 대기층을 접한 적도 없었다. 꿀벌의 규칙 즉, 빛이 들어오는 곳이 출구라는 규칙은 일상적인 상황에선 훌륭하게 적용되지만, 돌발 상황에선 죽음을 불렀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파리들은 2분도 채 되지 않아 병 입구를 통해 빠져 나왔다. 파리들은 햇볕의 유혹에도 개의치 않고 사방을 마구 날아다녔으며, 이리 저리 부딪히는 과정에서 출구를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단순한 무리들은 똑똑한 꿀벌들보다 쉽게 살아나올 수 있었다.
꿀벌들이 너무 자신의 경험에만 의지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이것이 바로 규칙의 비애다.
“실험, 꾸준한 시도, 모험, 즉흥 발휘, 가장 빠른 방법, 돌아가기, 혼란스러움, 판에 박힌 것, 임기응변 모두 변화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일 때 창조성은 질식된다.” (칼 웨이크 교수)
규칙은 유용하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 규칙도 변화해야 한다. 규칙을 위한 상황이 아니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이기 때문이다.